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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인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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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리의 사나이 혜강공 양팽손(梁彭孫.1480~1545)
Writer관리자 Hit4696
의리의 사나이 혜강공 양팽손(梁彭孫.1480~1545) 1
○ 양팽손(梁彭孫, 1488-1545, 字 大春, 號 學圃)은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(中宗, 재위1506-1544)대에 문장(文章)과 서화(書畵)로 명성을 날리던 문신 ○ 그는 조선 후기의 윤두서(尹斗緖, 1668-1715), 말기의 허련(許鍊, 1809-1892)과 함께 호남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손꼽히는데, 특히 양팽손은 호남 화단의 선구자로 지칭되지만 문장가이기도 했음. ○ 본관은 제주로 1488년 9월 19일 전남 능성현(현 능주)에서 양이하(梁以河)의 아들로 출생하여 1545년 8월 18일 타계 ○ 여섯 살 연상으로 1510년 생원시에 같이 등과한 조광조(趙光祖, 1482-1519)의 유배당시 곁에서 함께한 이가 학포였고 조광조가 타계하자 학포는 그의 사신(捨身)을 수습하였음. ○ 58년간의 삶 동안 올곧은 행동으로 청사(靑史)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으며 학자이자 문장가이며 문인화가(文人畵家)이기도 했음. ○ 그는 송흠(宋欽,1459-1547)문하에서 수학했고, 20세인 1507년 향시에 참여, 29세인 1516년 식년문과(式年文科)에 갑과(甲科)로 급제하였고 32세인 1519년 기묘사화(己卯士禍)에 연루되어 관직이 삭탈된 뒤 낙향 ○ 고향에 학포당을 짓고 은거하여 시서화로 시름을 달랬으며 50세에 관직이 회복되었고, 타계 1년 전 용담현령에 제수되었음. ○ 그는 16세기 전반 조선 화단에서 화가로서 어엿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〈산수도〉는 16세기 한국회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임. ○ 또한 글씨를 잘 썼고 이조판서(吏曹判書)에 추증되었으며, 능주(綾州)의 죽수서원(竹樹書院)에 배향되어 있으며 문집으로 《학포유집(學圃遺集)》이 전함. ⊙ 경력 · 조선전기의 학자 및 문인화가 · 1519년 교리(校理)로 재직중 기묘사화로 삭직 . 1537년 김안로가 사사(賜死)된 뒤 복관 된부 누차 나라에서 제수 하였으나 불취 하였음 · 시,서,화에 능하였고 이조판서 및 양관대제학에 추중되었으며 죽수서원과 용강서원에 배향되었다. ⊙ 작 품 문집「학포유집」 작품「산수도」「연지도」 「묵죽도」등 ⊙ 작품설명 주산(主山)의 모습이 안개의 바당 위에 떠 있는 듯한 환상적인 표한의 작품 근경, 중경, 원경의 뚜렷한 3단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(국립중앙박물관)
i 담당부서 : 관광진흥과 담당자 : 정다운 담당전화번호 : 061-379-3503
최근 업데이트 : 2017-01-09 조회 : 11,425