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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.1독립투사 양한묵(芝江 梁漢默.l862~19l9)
Writer관리자 Hit4185
3.1독립투사 양한묵(芝江 梁漢默.l862~19l9) 1
○ 독립운동가인 양한묵의 자는 길중(吉仲)이며 호는 지강(芝江)이다. 본관은 제주(濟州)이며 양상태의 아들임. ○ 지강 양한묵 선생은 1862년 4월 29일 해남군 옥천면 영계리에서 출생했으며 20살 때인 1882년 화순으로 이사하였음. ○ 1894년(고종31년)에 탁지부(度支部)주사(主事)가 되어 능주, 장흥, 보성 등지에서 세무관리로 3년간 근무하면서 이때 체포되었던 동학농민군을 많이 구출했음. ○ 1897년(광무1)에 관직에서 물러나 견문을 넓히기 위해 중국 북경 등지로 유람하였고 1902년(광무6)에 일본을 유람하던 중 그 곳에 망명 와 있던 손병희(孫秉熙)를 만났고 그의 천거로 천도교를 신봉하게 되었음. ○ 그 후 개화운동 단체인 진보회(進步會)를 결성하였고 1906년에 이준, 윤효정 등과 헌정연구회(憲政硏究會)를 조직하였음. ○ 윤효정, 장지연 등과 함께 헌정연구회를 확충하여 대한자강회(大韓自强會)를 조직해 일진회의 매국행위를 저지시킴. ○ 1911년 손병희와 함께 민족교육을 위해 보성전문, 보성중, 동덕여학교 등을 인수하여 육성했으며 그 책임자가 되어 인재양성에 힘쓰기도 했음. ○ 1919년 3 ·1운동 때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음. ○ 이후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며 온갖 고문에 시달리다 1919년 5월 24일 56세의 나이로 옥사 ○ 그의 유해는 서울 수유리에 안장되었다가 3년 후인 1921년에 화순 앵무산(화순읍 앵남리 소재) 자락으로 이장하였음. ○ 그는 평생을 민족의 자존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으며 3·1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유일한 호남인으로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복장이 수여되었음. ○ 현재 그와 관련된 유적지는 화순 남산에 있는 양한묵 선생 추모비가 있으며 화순읍 앵남리에 그의 묘소가 있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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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근 업데이트 : 2017-01-09 조회 : 11,425